낭만주의문학의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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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변 조회 3회 작성일 2021-04-07 10:24:3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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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사회에 등장한 '낭만주의'

장기화된 시민혁명에 지친 민중에게
활기를 불어내기 위해 등장한 '낭만주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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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와 리얼리즘 |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 이동진의 빨간책방 | 책, 임자를 만나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상과 철학들.

안광복 저자의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은
사상과 철학들을 쉽게 풀어냅니다.

이 책과 함께 우리를 매혹시킨 사상들의
큰 그림을 그려보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공지는 빨간책방tv 인스타그램 http://bit.ly/2SQrLdP
★영상에 들어간 도서 이미지 출처 : kyobobook.co.kr
★장소 협찬 :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평론] 셸리문학의 재조명 - 이풍호 시인(시문학 252호 1992년 7월호)

[평론] 셸리문학의 재조명 (시문학 252호 1992년 7월호) - 이풍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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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1992. 7. 1. 셸리 탄생 200주년 기념 특집 - 셸리문학의 재조명 / 시문학 7월호(제252호) 112-134페이지/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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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셸리 탄생 200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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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리 문학의 재조명




이풍호(PAUL LEE) 在美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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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의 문학지에서 시 추천을 받고 문단에 나와 현재 L.A.에서 번역 출판 저작권社인 EASTWIND WRITERS를 경영하고 있는 이풍호씨가 그곳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것을 토대로 하여 셸리 200주년 기념일인 8월 4일(탄생일 8월 4일, 서거일 7월 8일)을 기하여 보내온 원고이다. 셸리 기념행사는 구미 여러 곳에서 열릴 예정인데, 이 글은 셸리에 대한 새로운 각도의 최근의 논평이 된다. 말미의 시 8편은 한국에 자주 소개되지 않았던 것으로, 역시 이풍호씨의 번역이다.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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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2년 여름과 셸리




아내! 姉妹! 천사! 운명의 안내자
그 행로는 별도 하나 없는 길이었네! 아, 너무 늦게
내가 사랑하는 그대! 아, 너무 일찍 내가 애모하는 그대여!



- 퍼시 셸리의 詩 에피사이키디언 중에서



에피사이키디언 (Epipsychidion)은 내 영혼 너머 영혼(The Soul Out of My Soul)″을 뜻하는 시 제목으로써 사랑을 지상의 모든 한계를 넘어선 하나의 결합체라고 보며, 사랑에 대한 서사시의 시각(Rhapsodic Vision)을 열정적으로 표현한 광대무변한 사랑의 시(Cosmic love poem)이다. 이 시에서 퍼시 셸리(Percy Bysshe Shelly, 1792-1882)는 그의 귀여운 에밀리(Emily)를 태양으로, 두번째 아내 메어리(Mary)를 달, 그리고 이복 누이인 클레어(Claire)를 혜성으로 그리고 있다. 이 시 속에서 세명의 여성들이 강력한 역활을 하면서 지구 행성 같은 셸리를 중심축으로 하는 궤도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시 에피사이키디언 속에서의 그의 위치처럼 올 여름, 셸리는 지구상에서 다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심 인물이 될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오는 8월 4일은 셸리의 탄생 200 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 애호가와 학자들을 비롯한 셸리의 팬(狂)들은 그의 문학과 영혼을 재음미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웨일즈 그리고 영국에 모여 기념 강연과 전시회, 시 낭송회 등을 가질 예정이다. 태어난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에피사이키디언 을 비롯한 여러 詩文에서 셸리가 보여주고 있는 자유연애(Free love)주의와 남녀평등(Equality of the sexes)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 그리고 정치 에세이의 발표 계기로 그에게 위험스런 민중 선동가의 딱지를 붙이며 논쟁이 계속되어 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과 행동주의를 옹호하는 논평도 끊이지 않고 발표되고 있다.
이글은 셸리에 대한 이들 비평들의 실제를 알아보고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셸리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아울러 그의 시를 감상하기 위해 지금까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名詩들을 셸리 詩의 감상에서 소개한다.




2. 새로운 비평



정치적으로는 올바른 시인을 풍자적으로 비난하는 여성옹호론자들의 반발이 있어 왔다. 이들 페미니스트들이 크게 주목하고 있는 다음 두가지 점들을 들면 첫째, 셸리는 남녀 동등권을 주장하면서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여성은 남성의 거울 내지는 그림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과 둘째, 자유연애주의에 대한 셸리의 높은 이상은 그의 생애 중 여성들에게 비극과 고통을 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학자들 가운데서도 29년의 짧은 삶을 살면서 어다네이스 (Adonais, 1821), 종달새에게 (To a Sky-Lark, 1820)와 西風賦 (Ode to the West Wind, 1820), 구름 (The Cloud, 1820)과 같은 세계 고전 명시를 남긴 시인 퍼시 셸리에 대한 의견 차이도 있다. 어떤 학자와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서 셸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기도 하고, 시대에 적절한 인물이 되기도 한다.
셸리는 많은 여성들에 둘러싸여 지냈습니다. 그 여성들은 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라고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어 주립대학교(UCLA) 영어과의 앤 멜러(Anne K. Mellor) 교수는 말한다. 멜러 교수는 셸리의 낭만주의 연애(Romantic love)에 대한 개념이 동반하는 문제란 셸리 자신을 완성시켜주는 사람으로써 여성을 보는 점이지요 라고 덧붙인다.
셸리를 비판하는 감정중의 일부는 자유연애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변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60년대의 자유연애주의는 최신 유행에 정통한 것이었지만 80년대에는 셸리의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태도가 家庭을 한층 더 문제적으로 바라보게끔 해주던 여권 운동이 가난과 이혼 같은 여성화(Feminization)에 대한 문제점 등을 제기했다.
멜러 교수는 셸리의 두번째 아내에 대한 연구 저서 메어리 셸리 - 그녀의 일생과 픽션, 저주의 씨앗들(Mary Shelley: Her Life, Her Fiction, Her Monsters) 를 통해 셸리의 잘못된 과거 행적을 부분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18세에 예쁘고 마음씨 고운 16세의 해리엇 웨스트브뤀(Harriet Westbrook)과 결혼하여 가족들의 넉넉치 못한 도움으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가게 되었다. 1812년 2월 그는 아내와 처제를 동반하고 런던을 떠나 더블린으로 여행했다. 그 이듬 해 봄 그는 떨어져 살고 있던 아내를 버려두고 16세의 아름다운 메어리 갇윈(Mary Wollstonecraft Godwin)을 데리고 프랑스로 도주해서 그녀의 이복 여동생(Claire Clairmont)과 다른 여자들과도 이성 관계를 맺기도 하면서 자신의 비독점적 자유연애(Nonexclusive free love)주의 신념에 따라 첫번째 아내인 해리엇을 프랑스로 불러내어 메어리, 클레어 와 함께 자매 사이로 살도록 했다. 곧 이어 메어리의 아버지는 셸리의 이와 같은 자유 자재한 행동과 경제난에 대해 화를 냈고, 그들이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의 가족이나 친구들 거의가 그를 혁신적이며 부도덕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잘 대해주지 않았다. 2년 후 그의 아내 해리엇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다른 남자에 의해 임신하자 낙심한 채 익사했고 셸리는 그들 사이에 태어난 두 아이의 양육권을 법원으로부터 받는 데 실패했다. (이런 일들로 해서 세상 사람들은 셸리가 아내와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셸리는 1818년에 메어리와 재혼한 후 이탈리아에 가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으며 이방인처럼 살았다. 그곳에서도 첫번째 아내의 아버지의 도움과 그의 할아버지의 상속이 있었지만 그들의 경제난은 심하여 이집저집으로 이사를 다니며 살았으며 그의 건강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 1818년과 1819년에 걸치는 9개월 사이에 메어리가 낳은 클라라와 윌리엄이 죽고부터 메어리와 셸리의 관계가 예전과 같은 조화를 이룰 수가 없었다.
이러한 가정 문제와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라고는 거의 없는 형편에 처한 속에서 셸리는 1819년 그의 명작으로 알려진 사슬에서 해방된 프러미듀스 (Prometheus Unbound)와 훌륭한 비극 작품 The Cenci 을 완성했다. 이어서 그는 많은 서정시와 무질서의 가면 (The Mask of Anarchy), 개혁에 대한 철학적인 한 견해 (A Philosophical View of Reform) 등 신랄한 정치 에세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1820년 셸리 一家는 마침내 이탈리아로 가서 피사(Pisa)에 정착했으며 그의 성년의 생활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더욱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있었다. 이제 셸리의 주위에는 잠시 동안 이었지만 바이런卿(Lord Byron)이며, 에드워드 트렐로니(Edward Trelawny) 등 그의 친구들이 소위 셸리의 피사 서클(Pisan Circle)″을 이루고 모였다. 그리고 셸리가 가장 사랑하던 친구들은 인도에서 기병대 장교로 근무했던 에드워드 윌리엄즈와 에드워드의 매혹적인 내연의 처 제인(Jane)이 있었다. 셸리는 제인과 희롱삼아 연애했으며 그의 뛰어난 서정시와 詩文을 써서 그녀에게 보낸 일도 있었다(이 글에서 번역 소개하는 셸리의 시 가운데 제인에게 (강렬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소) To Jane (The Keen Stars Were Twinkling)는 그들 가운데 하나임).



앤 멜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셸리의 부정적 자질에서 비롯된 감정이 그의 아내 메어리(Mary W. Shelley)로 하여금 주인공이 여자 없이 자식을 낳고 난 다음 그 자식을 버린다는 내용의 괴기 소설 프랭컨스타인 (Frankenstein, 1818)을 쓰도록 고무시켰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자기가 만든 것에 의해 파멸되는 주인공인 醫學生이 자기의 가족을 찾는 데 이야기의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으며, 그가 마침내 배우자를 원할 때 빅터 프랭컨스타인(Victor Frankenstein)은 여성의 性(female sexuality)에 대한 강력한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셸리의 두려움을 상징하기도 하는) 그 여자를 찢어버린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중략...

2. 새로운 비평

정치적으로는 올바른 시인을 풍자적으로 비난하는 여성옹호론자들의 반발이 있어 왔다...
(평론전문: http://cafe.munhwa.com/view.php?id=literarture\u0026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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